나의 부채 이야기





내 주변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부채를 굉장히 좋아 하는 사람이다


어렸을때 부터 날이 더워지는 시기가 되면 항상 부채를 들고 다녔고 


부채 종이가 찢어지면 테이프로 붙이고 그마저도 찢어져서 쓰지 못하게 될때 까지 사용했다.

(합죽선이나 오죽선, 민합죽선 같은 접선들은 종이가 찢어져도 종이만 갈아서 다시 사용할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 사실도 몰랐다.)


고등학교 선배중 한명은 나를 부채도사 라고 부르기도 했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중에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 부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나에게 부채란 부채보단 부채질에서 나오는 바람에 더 의미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엄재수 선자장님의 작품을 만나고 소유하게 된 이후로 부채 자체에 대한 멋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지만


각설하고


왜 나는 부채질에서 나오는 바람에 의미를 두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자면 굉장히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는데


가장 어린 기억으로 돌아가 보면


나는 어렸을때부터 더위를 굉장히 많이 타는 체질이었고 땀도 엄청나게 흘렸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땀에 젖어있을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는데


어린시절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부채질을 해주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너무 어릴때였기에 어떤 상황었는지 어느 장소였는지 어느 시기였는지에 대해선 기억나지는 않고


더운 여름날 흘리는 땀을 식혀주며 온몸이 시원해지게 해줬던


솔솔 불어오는 어머니의 부채바람이 너무나도 편하게 느껴졌던 기억만큼은 확실히 난다. 


그 바람만큼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한번 바람이 불면 몸의 열기가 식고나서 다시 여름날의 더위가 몸에 쌓인다.


그리고 또한번 부채질이 왕복해 바람을 만들어 내면 열기가 다시 식는다.


한번 부채질을 하고나서 행복하게 편안하게 다음 바람을 기다렸던 


그리고 한번 바람이 불때마다 느껴졌던 그 편안함과 안정감 만큼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더운 여름날 어머니도 얼마나 더우셨겠는가. 그러나 칭얼대던 아들의 낮잠을 위해서


오롯이 아들을 향한 부채질을 한다는것이 지금와서 생각하면 


무뚝뚝한 편이셨고 굉장히 엄하셔서 무서웠던 어머니의 기억중 따듯하게 기억되는 몇안되는 기억중에 하나였다.


나에게 최초의 부채질 바람은 편안함이었고 어머니의 희생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부채바람이 어떤 이미지일진 모르겠지만 나에겐 시원함 보다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바람이다.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에서는 느낄 수 없는 향수가 담긴 바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때 


어머니께서 부채질 해주던 바람을 잊지 못해 여름마다 내손엔 부채가 쥐어져 있었던것 같다.




부채바람이라는 것이 나에게 편안함, 안정감, 사랑 이런 이미지였던 탓일까?


머리가 커진후 나는 이 부채질을 여자의 호감을 사기 위한 용도로 즐겨 사용했다.


내가 느꼈던 안정감을 상대방에게도 전달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일까


뜨거운 여름, 혹은 열기가 가득한 클럽 안에서


내가 아닌 남을위해 부채질을 해주는것은 나에게 있어 최대한의 호감표시였다.


그리고 그 방법은 생각보다 꽤 잘 먹혀 들었다.


생각해보라 무더운 여름날 햇빛이 내려쬐는 곳에서


누군가 나를 위해 햇빛을 가려주고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을 보내주는데


정작 그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오롯이 나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호감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저사람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나를 남에게 인식시키는 것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는 법이다.



한여름밤 뜨거운 열기가 가득찬 클럽에 갈때도 나는 부채를 들고 갔다.


신나게 놀다가 너무 힘들어 클럽의 에어컨 앞에서 잠시 쉬고 싶지만


그곳은 항상 사람이 몰려있어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닿는곳 까지 이동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그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여자 있으면


 혹은 같이 춤을추고 있을때도 파트너가 더워하는 기색을 보이면


부채를 꺼내 부채질을 해주곤 했다.


21세기 서울에서 일렉트로닉 하우스 음악에 비트가 쿵쿵거리는 클럽에서 매화가 그려진 부채질이라니


병신같지만 당장 더워서 들숨날숨이 거칠어 지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 순간 상대방에게 나는 부채질 해주는 남자로 각인이 된다.


물론 더위를 잘 타지 않는 사람에게 부채질을 해줬더니 


엄청나게 부담스러워 하거나 추워하는 사람을 만났을땐 당혹스러워 했던 헤프닝도 있었지만 말이다.


혼자서 여행을 하다가, 학교 행사가 있을때, 혹은 클럽에서, 내가 공연을 마치고 나서


항상 내 손엔 부채가 들려있었고 누군가는 나의 부채질 바람에 시원함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선시대 선비들도 여자를 꼬시는데 부채를 사용하곤 했다.


자신의 마음을 담은 시를 부채 선면에 적어 선물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중에 나처럼 햇빛을 가려주거나 정인을 위해 부채질하던 선비가 있지 않았을까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 재밌는 상상도 해본다.





내가 자주 듣는 이야기중에 


선풍기도 있고 에어컨도 있고 밖에서는 휴대용선풍기가 있는데 왜 부채를 들고다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간단히 답해주기가 힘들다.


돌아보면 내가 진짜 부채를 들고다니고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는 이유는


위에 서술했던 어렸을때 기억부터 시작해 또 다른 이유중 하나로


선풍기에선 느낄 수 없는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에어컨과 선풍기는 앞에 있으면 쉬지 않고 일정한 바람을 나에게 보내온다.


그러나 부채질은 어떠한가


한번 바람이 불고 그 다음 바람이 올때까지의 짧은 기다림이 있다.


바람이 불면 열기가 식고 다음 바람이 오기 까지 다시 열기가 쌓인다.


그 열기가 조금 쌓였을때 또 바람이 불어와 열기를 식혀주고 나에게 만족감을 선물해 준다. 


그리고 그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가 된다.


우리가 숨쉴때마다 사용하는 공기가 사라져야 그 공기의 소중함을 느낄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배고픔을 느낄때 먹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음식처럼 느껴진다.


부채질 바람은 그런 존재의 부재로써 오는 소중함을 매번 느끼게 해주는 재미가 있어


선풍기와 에어컨바람과는 다른 바람이다.(그리고 손선풍기보다 접선(摺扇) 으로 일으키는 바람이 훨씬 강하고 시원하고 풍성하다.)


그렇다고 한여름에 에어컨과 선풍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과학의 발전에 따른 풍요는 즐겨야 함이 마땅하다)


휴대용 선풍기와 부채가 둘다 눈앞에 있을때 나는 부채를 손에 쥔다.



이것을 이해 시키려면 물어본 사람에게 나의 어린 기억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하기엔 말이 길어지기 때문에


"그냥요 그냥 부채가 좋아서요"


라고 대답하곤 한다.


이제부터 누군가 물어보면 이 게시글을 보여주던가 해야겠다.





오늘은 그냥 나에게 부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부채에 어떤 추억들이 있는지


말하고 싶었다.


이 블로그에 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개발관련된 내용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몇명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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