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채를 좋아하고 즐겨 쓰는 사람입니다.
부채를 쥐고 여름을 난지 벌써 10년도 넘었다. 중학생 때부터 사용했으니 15년은 된 것 같다.
몸에 열이 많고 땀이 많은 체질이라 중학생 때부터 여름이 되면 부채를 쥐고 살았는데
나에게 여름은 특히나 에어컨이나 선풍기도 없는 야외에서 부채는 나에게 생명줄과도 같았다.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면 사진 속에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다.
부채를 들고 있는 사진 속 내 모습은 항상 더위에 지쳐 땀에 절어있는 모습뿐이고 부채는 항상 헤져있다.
아무튼 나는 부채를 굉장히 좋아하고 즐겨 쓰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지금도 해외로 여행을 가게 되면 현지의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부채는 한두 개씩 꼭 사서 들어온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선배가 지어준 내 별명은 부채도사였고
친구가 부채 좀 그만 들고 다니라고 생일 선물로 미니 선풍기를 사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여름철 내손엔 항상 부채가 쥐어져 있거나 가방 속에 부채가 들어 있었다.
내가 쓰던 부채의 변화
부채를 사용했던 긴 세월만큼 내가 쓰던 부채의 종류도 변했다.
중학생 땐 그냥 판촉물로 나눠주는 공짜 플라스틱 동그란 부채
고등학생 때는 길이나 지하철에서 파는 민합죽선
군대에서 전역한 이후론 싼값에 들어오는 선면이 나일론 종이로 되어 있는 중국식 접선을 들고 다녔다.
동그란 플라스틱 부채는 얇지만 가지고 다니기 부담스럽고 시원하지가 않았다.
민합죽선은 시원하고 예쁜 그림이 있지만 비싸고 한지가 약해 금방 찢어지거나 망가지기 쉬웠다.
중국식 접선은 부챗살 양면으로 종이가 붙어있어 튼튼하고 시원하고 가격도 저렴해 만족했으나 나무 부분이 일어나
손에 찔리는 일이 잦았다. 그런 중국식 접선을 취직한 이후로도 나는 계속 사용했다.
합죽선을 알게 되었다
2018년 작년 여름에도 어김없이 부채를 사려고 인터넷을 뒤지던 도중 어떤 게시글을 발견했다.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에 올라온 한국 전통 합죽선을 소개하는 글이었다.
칠접선, 합죽선, 말아 싸기, 내각 기법, 우각, 대모, 어피 전부 처음 듣는 단어들뿐이었기에
내 눈에 들어온 건 유려한 곡선과 전통적인 미를 뿜어내는 부채 사진들이었다.
사진들을 보고 내 머릿속엔 온통 '이 예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부채를 가지고 싶다'
라는 생각뿐이었고 그 사이트에서 그분이 올린 합죽선 관련된 글을 3개 정도 정독하고 난 뒤
어디서 구매를 해야 하는가. 어떤 부채를 구매해야 하는가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전X부XX구X 라는 사이트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부채는 15만 원 20만 원...
정말 좀 예뻐 보이는 부채는 100만 원도 넘어가는 가격에 놀랐다.
그런데 살짝 아쉬운 점은 15만원짜리 20만원짜리 부채가 싼 편에 속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생각할 땐 고가에 속하는 데다가 자세한 사진도 없고
그나마 있는 다른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감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내 기억에 보름 동안 하루에 세 시간은 그 사이트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걸 사면 내가 후회할까? 그 당시의 나에겐 15만원은 쓰려면 쓸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쉽게 지출할 수 있는 금액도 아니었다.
그래서 정보를 더 모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봤던 글을 두 번 세 번 정독하고 내용들을
머릿속에 조금씩 담아갔다.
대나무로 만든 합죽선, 겉대를 소뿔로 치장한 우각선, 어피로 치장한 어피선,
대모로 치장한 대모선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전주에서 합죽선을 만드시는 분은
김동식 선자장님, 박인권 선자장님, 엄재수 선자장님
이렇게 3분이 계신다는 것과 각 선자장님들이 만든 부채들의 특징들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식견이 없어 어떻게 골라야 할지도 모르겠고
김동식 선자장님과 엄재수 선자장님의 부채는 웹상에서 찾아보기도
가격이 얼마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당장 전주로 내려가서 직접 부채를 보고 손에 쥐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도 돈도 부족했기에 작년 여름은 부채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보기 싫다며 친구가 선물해준 미니 선풍기와 중국식 접선을 들고 여름을 났다.
전통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올해 4월이 되었고 올해의 나는 작년의 나보다 부유했다.
연봉이 오른 것도 있고 적금도 끝났으며 연봉 외의 수입도 있었기에 자금 사정은 여유로웠고
작년에 포기했던 부채를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작년에 봤던 동일한 글을 다시 정독하고 구글링을 하다가
합죽선을 많이 소장하고 소개하는 글을 쓰시는 분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오유에 글을 올리신 분과 동일하신 분이었다.
20개가 넘는 포스팅들을 전부 정독하고 두 번 세 번 다시 읽고 공부하며 이해하려 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직접 전주에 내려가서 내 눈으로 보고 쥐어보고 결정 하자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선자장님과 대화도 해보고 구매하고 싶어 블로그 주인분께 연락을 해보니
그 주에는 엄재수 선자장님을 뵙기 힘드니 그다음 주에
본인께서 약속을 잡아 함께 만날 수 있다며 그때 보자고 하셨다.
하루하루 새 부채를 살 마음에 두근거리며 전주에 내려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글에서 합죽선을 검색해보며 시간이 지나 전주로 내려가는 날이 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에 고속버스에 올라타고 잠에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직도 버스는 경기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차가 너무 막혀 버스가 연착되어 버린 것이다.
약속시간은 다가오는데 버스는 이제야 천안을 지난다.
옆자리의 아주머니들도 시간이 늦었다며 발을 동동 구르다 이내 포기했는지
다른 아주머니들과 담소를 나누기 시작한다. 붙임성 좋은 한 분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창밖을 보는 척 귀를 기울이고 시간을 보냈다.
10시 즈음에 공방에 도착해야 하는데 11시가 한참을 넘어서야 버스는 전주에 도착했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의 주소를 보여주니 주말 동안 한옥마을 내부로는 자동차 진입 금지라는 말에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결국 공방이 있는 전주 한옥마을 입구에서 내려 다시 지도를 켜고
한옥마을을 둘러보거나 구경할 새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공방을 향했다.
미선 공예사에 도착하자 실장님께서 반겨주시고 블로그 주인 분과 엄재수 선자장님께서 나오셨다.
만난 적도 대화해본 적도 없었는데 한눈에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이 나인걸 알아봐 주셔서 너무나도 신기했다.
미선 공예사 안쪽으로 들어가니 유리관으로 전시되어있는 부채들이 유려한 모습을 뽐내며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만나기로 한 시간에 늦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자 블로그 주인분께서 괜찮다고 하시곤
반 농담으로 합죽선을 구매하기 전에 면접(합죽선을 다뤄본 적이 없는 초심자에게는
비싼 부채는 추천하지 않고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비교적 싼 가격의 부채를 먼저 권한다고 한다)을 봐야 한다고 하시며
굉장히 반겨 주셨다.(블로그 주인분은 내가 처음 본 합죽선 글을 작성하신 분이시기도 했고 햇살선자방 이라는
합죽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장 이시기도 했다.)
엄재수 선자장님께서 유리관을 열어 안에 있는 부채를 보여 주시고 직접 손에 쥐어 보라고 하셨다.
합죽선을 폈다 접었다 해보지만 얼마나 비싼 부채인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잔뜩 긴장해서 폼이 영 어색하다.
선자장님께서 그냥 편하게 하시면 된다면서 시원시원한 모양새로 부채를 접었다 피는 모습을 보여 주셨고
반죽선, 대모선은 문인 성향인 사람에게 어울리고
우각선, 어피선은 무인 성향인 어울린다고 말씀하시며 나는 무인성 향인 것 같으니
우각선을 쥐어 보라시며 우각선을 추천해 주시고 공방에 있는 부채를 거의 종류별로 다 쥐어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대모선은 살짝 무거운 느낌이었고 어피선은 무겁고 손에 감촉이 영 불편했다.
반죽선은 너무 가벼운 느낌이었고 귀갑선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무인 기질이 있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자꾸 우각선에 눈이 간다.
전주에 내려오기 전엔 70~80 정도를 생각을 하고 내려왔으나 막상 우각선을 손에 쥐어보니 욕심이 나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했다.
엄재수 선자장님께서는 약속이 있으시다며 자리를 비우시고 이왕 전주에 내려온 김에 이곳 말고
다른 선자장님들의 작품도 둘러보고 오시라고 하셨다.
점심시간이 되어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박인권 선자장님이 운영하시는 선자청으로 향했다.
선자청은 한옥마을에서 조금 벗어나 15~20분 정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다.
선자청에 도착하니 박인권 선자장님은 자리에 계시지 않으셨고 아드님이시자 전수자이신 박계호 씨가 계셨다.
어떤 부채를 찾느냐는 말에 그냥 합죽선을 찾는다고 하자 7~15만 원선의 부채를 보여주셨었는데
미선 공예사에서 부채를 보고 와서인지 눈에 차지 않았다. 다른 부채들을 더 보여 달라고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확실히 엄재수 선자장님의 부채와는 다른 특징들이 보였다. 대모와 어피의 사용 방법이라던가 낙죽도 모양이 다르고
가격대가 달랐다.
박인권 선자장님은 부채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도 함께 운영하시고 협찬도 많이 하고 계신다.
중저가의 부채들을 많이 팔고 계시는데 비싼 부채들은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선자청을 둘러보고 김동식 선자장님의 부채도 둘러보고 싶었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다되어 지도를 찾아볼 수도 없고
시간도 애매해 잠시 쉬기로 하고 한옥마을 근처에 있는 카페로 발걸음을 돌렸다.
카페에서 잠깐 핸드폰 충전을 하고(한옥마을 내부에 있는 카페들은 충전을 안 해준다. 꼭 보조배터리를 가지고 내려가자)
2층 테라스에서 지친 다리를 쉬게 하며 잠시 고민에 빠진다.
과연 그 돈을 주고 부채를 살 가치가 있을까?
그 가격의 부채를 내가 실생활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
준작품급의 부채를 사면 결국 다시 비싼 부채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지금 내 자금 상황에서 그만한 지출을 하더라도 무리는 없을까?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며 고민을 하다 엄재수 선자장님의 우각선이 눈에 밟혀
마음을 굳히고 미선 공예사로 걸음을 옮겼다.
미선 공예사로 돌아가니 선자장님께선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고 실장님께서 안쪽에 들어와
앉아 쉬라며 자리를 내어 주셨다.
카운터 안쪽 의자에 앉아 선자장님을 기다리며 공예사에 방문하는 손님들을 보니
마치 해외여행 온 여행객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물론 정말 해외여행 온 외국인들도 있었다)
실장님께 선자장님의 작품을 구입하시는 분들의 연령대를
물어보니 생각보다 젊은 분들이 많다고 하셨다.
나같이 젊은데 노인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말 어린 분들 중에선 고등학생도 있다는 말에 좀 놀랐다.
연령대도 직업도 참 다양하다고 한다. 예술계통에 일하는 사람, 나처럼 개발자로 일하는 사람도 있고
학생도 있고 나이 때도 나이가 많으신 분부터 젊은 분들까지 다양하다.
잠시 후 엄재수 선자장님께서 돌아오시고 함께 아까 봤던 부채가 전시된 유리관 앞으로 가서
다시 여러 부채들을 나에게 쥐어보라며 건네주신다.
대모, 어피, 우각, 반죽 , 합죽 중에선 이미 우각선을 고르기로 마음먹은 상태였기에
몇 가지 우각선들을 손에 쥐어본다.
선자장님께서 부채는 손으로 사용하고 손에서 노는 것이기에 손에 맞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시며
눈으로 고르지 말고 손으로 고르라고 조언을 해주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부채를 쥐었다 내려놨다 펼쳤다 접었다 반복해본다.
눈에 예뻐 보이는 부채는 군안의 코가 높지만 막상 쥐어보니 높은 코가 손에 걸려
영 불편한 느낌이다. 어떤 부채는 눈에는 전부 만족스럽지 않지만 손에 쥐었을 땐 굉장히 편하다.
정말 약 1시간가량을 5점의 부채를 놓고 쥐었다 놓았다 하며 고민하는데도 선자장님께서는
재촉하거나 불편한 기색 없이 차분히 기다려 주셨다.
가장 불편한 부채를 하나씩 제외시키고 마지막 2점이 남았을 때 한참을 고민하자 선자장님께서
둘 중 하나를 추천해 주신다. 하나는 색상이 마음에 들었지만 우각 모서리에 약간의 상처가 있던 부채였고
하나는 그냥 무난하지만 손에 편하고 우각 부분에 상처가 없는 부채였는데
부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상처 난 부분을 포인트로 삼고 자기 부채만의 특색으로 생각해 이런 부채를
고르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 부채를 접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비싼 가격에 흠집이 나있는 부채를 사면
자꾸 마음에 걸리게 되니 상처가 없는 부채를 고르라고 하셨다.
선자장님의 추천에 따라 겉대가 검은색과 갈색이 묘하게 섞인 물소뿔로 만들어지고 군안은 벽조목으로 만들어진
우각선을 골랐다.
부채를 고르고 선추를 고를 때는 실장님의 추천으로 붉은색 선추를 골랐다. 선추는 대부분 부채의 재료와
선추의 패물을 매칭 시키는데 우각선엔 패물이 소뿔로 된 것을 써야 통일감도 있고 부채와 선추가
서로 침범하지 않고 조화로워 보인다고 하셨다.
결정이 끝나자 마치 전통을 내 손안에 쥔 느낌이었다.
부채 값을 지불하고 부채를 포장하고 난 후 선자장님과 공방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올해 전시회의 콘셉트와 내년 부채 제작은 어떻게 할 것인지의 대략적인 계획들 그리고 어떻게 부채를 만드시는지
사람들에게 어떤 부채가 좋을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등등 부채를 참 좋아하시고 노력을 하시는 것과 전통 합죽선을
만들고 복원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이 느껴졌다.
짧지만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길에 한옥마을을 둘러보니 참 특색 있는 곳이라는 것이
그제야 느껴졌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서울로 가는 표를 끊고 오늘 하루가 참 길지만 짧았다고 느끼며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하루였지만 나에겐 어떻게 보면 큰 이벤트가 있었던 날이었고 부채를 사용하는 날만큼 오랫동안 기억될
날이 될 것 같다.
전주에서 돌아오니 시간도 너무 늦고 피곤해 다음날이 되어서야 사진을 찍어 보았다.
겉대는 검은색과 갈색이 묘하게 섞인 물소뿔이고 군안은 벽조목으로 만들어졌다
선면은 황칠된 한지다.
일반적인 한지의 내구성이 낮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황칠을 했다고 한다.
종이가 헤지거나 망가지면 다른 종이로 교체해 붙일 수 있다고 하니 그때는 검은색 한지를 붙여 보고 싶다.
실제로 사용합니다.
이 비싼 부채를 내가 실제로 편히 사용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잘 사용하고 있다. 아직까지 정말로 마음 놓고 편하게 사용하진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부채를 소중히 다루면서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회사에 출근할 땐 항상 클러치백에 넣고 더울 때마다 사용하고
펜션으로 놀러 갈 때도 꼭 챙겨가게 된다.
얼마 전에 인사동으로 놀러 갔을 때에도 우각선을 들고 갔었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민합죽선을
만드시는 분이 내 부채를 보더니 한눈에 참 좋은 부채라고 칭찬을 해주시는데
마음이 간질간질 기쁜 마음이 들었다.
부채는 사치품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비싼 재료를 사용해 부채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마치 오늘날의 남자들이 착용하는 명품시계와도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싼 시계도 잘 차고 다니는데 비싼 부채라고 못 들고 다닐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채보다 훨씬 가격이 비싸지만
애초에 사치품이라는 품목 안에 넣고 생각하니 그렇게 비싼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사치품, 공예품,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싼값이다.
선풍기 에어컨이 있는데 뭐하러 부채를 쓰냐는 사람들에게 핸드폰 있는데 뭐하러 시계를 사냐고 되묻고 싶다.
결국 시계나 부채나 안목이 없는 사람은 좋은 것인지 비싼 것인지 알지 못하는데 말이다.